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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눈 떠보세요."
추석 당일인 지난 25일 오후 강원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중증응급구역.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는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어디서 오셨나요?"
쉴 새 없는 질문 사이로 심전도기 전자음이 '삐빅'하고 울려 퍼졌다. 의료진은 침상에 누운 환자에게 수액을 연결하고 응급처치를 이어갔다. 차트를 든 의료진이 침상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동안 간호사들은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고 처치 내용을 입력했다. 보호자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으로 이들을 지켜봤다.
응급실 입구에는 강릉과 '동해안 최북단' 고성, 태백 등에서 출동한 구급차 3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인계하고 돌아서는 사이에도 응급실 안에서는 의료진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들이 모여 명절을 보내는 시간. 동해안 중증환자의 최종 치료 거。인 이곳에는 '추석 연휴'라는 말이 무색했다.
고성서 1시간 달려온 구급차…대동맥 파열 환자는 서울행
이날 응급실에는 고성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70대 남성이 실려 왔다.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는 등 크게 다친 그는 응급수술을 받았다.
또 다른 구급차에서는 지병을 앓던 환자가 내렸다. 갑작스러운 설사 증상으로 119안전센터 구급대원들이 약 73㎞를 달려 이송한 환자였다. 이동에만 1시간이 걸렸다.
환자를 인계한 구급대원은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부족하고 소아과도 마땅치 않다 보니 소아환자는 원주나 춘천까지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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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아산병원에는 고성과 속초, 동해, 삼척뿐 아니라 태백과 정선, 평창 등 강원 남부 내륙과 경북 울진에서도 환자가 몰린다. 이날은 귀성객과 관광객이 늘면서 서울·경기 등에 주소지를 둔 환자들도 눈에 띄었다.
자가용이나 도보로 직접 응급실을 찾는 이른바 '워크인'(Walk-in) 환자도 적지 않았다. 주변 의료기관에서 진료받기 어렵거나 증상이 걱정돼 찾아온 경증환자들까지 몰린 것이다.
중증환자들의 사정은 더욱 급박했다.
이날 새벽 5시쯤에는 동해에서 소장 허혈 증상을 보인 70대 여성이 이송됐다. 장으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지는 중증질환이다.
전날인 24일 오후 11시쯤에는 대동맥 파열 환자가 발생했다. 의료진은 응급처치 후 환자를 헬기에 태워 서울 이대서울병원으로 이송했다.
명절 환자 최대 2배…경증환자까지 몰리면 중증 치료 부담
이 교수에 따르면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24일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약 130명이다. 평소 하루 80~90명 수준이지만 명절에는 1.5~2배까지 늘어난다.
특히 혼자 지내던 고령자가 명절에 찾아온 가족에게 발견돼 이송되는 경우도 있다. 이 교수는 "그런 분들은 이미 상태가 상당히 악화된 중증환자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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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8월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월평균 환자는 2781명으로, 중증·준중증 환자 비율이 86.28%에 달한다. 지난해 추석 연휴 중 환자가 가장 많았던 10월 7일에는 평시 일평균의 약 1.9배인 144명이 찾았다.
환자가 늘어나는 것만큼 의료진이 우려하는 것은 경증환자까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 집중되는 현상이다.
이 교수는 "경증환자도 의료진의 손이 필요하다. 그만큼 중증환자를 볼 여력이 줄어든다"며 "인력 부족으로 중증환자에게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태백산맥 넘어야 하는 중증환자…영동권 의료격차 여전
강릉아산병원은 강원 영동권 유일의 상급종합병원이다. 고성부터 삼척, 경북 울진까지 동해안은 물론 태백과 정선, 평창 등 내륙지역의 중증환자도 담당한다.
이 교수는 "보통 2시간 거리까지 저희 병원에서 담당한다"며 "그 지역에는 중증환자를 치료할 만한 병원이 마땅치 않아 결국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강릉아산병원에서도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가 발생했을 때다. 춘천이나 원주로 이송하려면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고, 헬기 역시 기상 상황과 시간대에 따라 운항이 제한된다.
이 교수는 "교통체증이 없다면 강릉에서 춘천까지 육로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헬기가 반드시 빠른 것은 아니다"라며 "명절처럼 고속도로가 막히면 헬기 이송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환자를 당장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치료가 지연되면 생존하더라도 합병증으로 예후가 크게 나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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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이 국립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집중되면서 실제 영동권 중증환자를 담당하는 민간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영동과 춘천은 실제 담당하는 환자와 의료권역이 다르다. 영동지역 환자가 강원대병원까지 이동하는 동안 상태가 악화할 수도 있다"며 "국립대병원에만 지원을 집중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엄마 미안해, 가고 싶은 마음 알지?"…응급실 간호사의 추석
오후 3시 30분, 근무를 마친 오예림 간호사가 응급실을 나섰다. 그러나 다음 날인 26일에도 오후 2시 30분 전까지 다시 출근해야 한다.
강릉에 사는 오 간호사의 친정은 동해시, 시댁은 경기 남양주다. 이번 추석에는 어느 곳도 찾지 못했다.
그는 "남들이 쉴 때 쉬지 못하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추석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친정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잠시 웃으며 "엄마, 미안해. 내가 맨날 가고 싶은 마음 알지?"라고 짧은 인사를 남겼다.
고성에서 환자를 이송해 온 구급대원도 가족에게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응급실이 조금 안정을 되찾을만 하니, 병원 전체에 긴급 방송이 울려 퍼졌다.
"CPCR, 코드 블루. 권역응급집중치료실, 심장내과."
심정지 등 위급상황에 대응하는 의료진을 호출하는 방송이었다. 응급실에서는 또 다른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 처치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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