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폭스바겐 ID.4..."폭스바겐의 한계를 넘어선 전기차"

십여년 동안 매년 방문했던 독일을 한동안 가보지 못했다. 유례없는 펜데믹에 전세계는 보이지 않는 성벽을 세웠다. 이방인의 출입을 막았을 뿐, 그 안에서의 삶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모터쇼는 중단됐지만 새로운 자동차는 만들어졌고, 시승 행사는 사라졌지만, 자동차는 여전히 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그새 도로에는 새로운 유행이 퍼졌다. 

2년 만에 찾은 독일은 조금 낯설었다. 도로에는 배터리를 품은 전기차가 크게 늘었다. 그리고 골프가 귀해졌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이박’이 맞는 게 아니라 골프가 맞는 나라가 독일인데.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유럽의 자동차 판매량은 큰 폭으로 줄었고, 골프 역시 2020년 한 해 동안 판매량은 전년 대비 1/3로 감소했다. 그런데도 독일에서 가장 많은 판매대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판매 감소가 체감될 정도로 도로에서 신형 골프를 흔히 마주치진 않았다. 대신 새로운 얼굴을 지닌 폭스바겐들이 독일 도로 풍경을 낯설게 만들었다.

뮌헨 시내에서 ID.3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골프가 줄어든 만큼 ID.3가 늘어난 것 같았다. 귀여운 얼굴로 도로를 산뜻하게 만들었다. 자동차 애니메이션에 당장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장난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는데, 그에 반해 ID.4는 진지함이 풍겼다. 같은 플랫폼에서 탄생한 형제지만 ID.4는 숫자 하나의 차이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컸다. 티구안의 자리를 꿰차게 될 자동차인데, 티구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거대함까지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이 면이 강조된 디자인과 넓은 차폭, 높은 전고는 ID.4를 제원보다 더 크게 보이게 했다.

형태의 차이도 있었다. ID.3는 공기저항 최소화하기 위한 캡포워드 디자인이 적용됐다. 보닛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보닛의 상승 곡선이 그대로 A필러로 이어지게끔 만들었다. 기능을 중요시하는 전기차에 흔히 적용되는 디자인인데, ID.4는 새로운 전형이 되어가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그린하우스는 마치 쿠페처럼 낮고 날렵한데 몸체는 두툼했다. 그리고 굵은 주름이 이 두 부위를 가로질렀다. 무심한 것 같지만 곳곳의 꾸밈은 섬세했다.

시동 버튼이 있지만, 그것을 굳이 누를 필요는 없었다. 차키만 가지고 있으면 차에 올라 기어셀렉터를 돌려 출발하면 됐다.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전원을 끄지 않아도 됐다. 문을 닫으면 끝이었다. 차를 움직이게 하는 여러 단계 중의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굉장히 신선했다. 보수의 최고봉처럼 느껴졌던 폭스바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ID.4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 MEB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메가플랫폼 트렌드를 이끈 폭스바겐답게 전기차 생산에서도 플랫폼 싸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물론 내연기관보다 전기차 플랫폼은 구조가 더 단순하고, 기본적인 개념이나 구조도 다른 제조사와 큰 차이를 두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폭스바겐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도 처음 만들어 본 것인데 말이다.

엔진이 전기모터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 새롭고 놀라웠던 것은 구동방식의 변화였다. 폭스바겐은 전륜구동의 장인과도 같았는데 MEB 플랫폼을 통해 제작되는 전기차의 대부분은 후륜구동 방식이 적용될 예정이다. 엔진의 위치나 배치를 바꾸는 어려움이 전기차에는 없다. 구조를 새롭게 하거나 비용이 더 추가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뒷차축 위에 놓인 전기모터는 직접 뒷바퀴를 굴리기 때문에 여러 단계를 거칠 때 발생하는 저항도 최소화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도 극대화할 수 있던 셈이다.

전기차가 아니더라도 기본기가 탄탄한 차를 만드는 게 폭스바겐인데, ID.4는 그보다 한단계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 전기차의 구조가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동차에 더 유리해서다. 77kWh 용량의 배터리는 차체 밑바닥에 깔렸다. 배터리팩의 무게만 대략 493kg. 전체 중량의 22% 정도다. 덕분에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훨씬 더 낮은 무게 중심을 갖게 됐고, 또 차체 곳곳으로 무게가 분산돼서 더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승차감도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월등히 나았다. 산길에서도 ID.4의 안정적인 거동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후륜구동 특유의 날카로움까지 담겨있었다. 코너를 빠르고 또 부드럽게 돌았다. 골프의 감각도, 티구안의 느낌도 아니었다. 그동안 폭스바겐에서 느낄 수 없었던 움직임이었다. 앞머리가 코너 안쪽으로 꺾여 들어갔다.

그동안 폭스바겐의 스티어링 시스템은 앞차축 뒤에 위치했는데, ID.4는 앞차축 앞쪽으로 변경됐다. 그 덕에 스티어링 기어비가 달라졌고 긴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전기차지만 마치 소형차처럼 방향을 틀었다. ID.4의 회전반경은 10.2m에 불과했다. 참고로 테슬라 모델3는 11.8m, 포르쉐 911은 11.2m다. 조금은 어색했다. 분명 운전대를 원하는 만큼 돌렸는데, 더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계속된 보타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차선을 조금 넘어가니, 단순히 속도만 보여주던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새로운 그래픽이 나타났다. 차선에 빨간 선이 그어졌다. 또 차선뿐만 아니라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작동시켰을 때는 앞차를 확인하고 있다는 표시로 앞차 밑에 밑줄까지 그었다. 속도를 보여주는 화면은 운전자의 2m 앞 지점에 상이 맺히고, AR 화면은 10m 앞 지점에 상이 맺히게 설계됐다. 이질감 없이 일반 화면과 AR 화면이 조화를 이뤘다. AR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차들이 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다.

아우토반에서 ID.4의 최고속도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최고속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ID.4의 최고속도는 시속 160km. 더이상 속도가 높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전기모터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힘이 남았다. 아쉬운 부분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효율에 더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ID.4는 배터리 용량, 전기모터 성능 등이 각기 다른 다양한 라인업을 지니고 있는데, WLTP 기준으로 최대 522km를 달릴 수 있다. 낯선 독일에서 전기차를 시승하면서 가장 신경 쓰인 부분은 배터리 충전이었다. 최대 125kW로 충전이 가능했고, 배터리를 거의 소진해도 30분이면 80% 이상 채울 수 있었다. 최대 충전속도가 테슬라나 현대차에 비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충전하는 동안 일정하게 빠른 충전속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7년전 독일 베를린에서 폭스바겐 e-골프를 시승했었다. 그때 폭스바겐이 계획했던 전기차와 ID.4는 아주 달랐다. 그때만 해도 폭스바겐은 기존 내연기관 모델을 그대로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었다. e-폴로, e-골프, e-티구안 같은 모델을 꿈꿨다. 그 당시에도 전기차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 느꼈는데, ID.4를 시승하고 나니 오히려 지금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고 느껴졌다. 완전히 물꼬가 트인 것 같았다. ID.4도 충분했지만 내심 몇년 후의 미래가 더 기대됐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