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가 인터넷 최저가? 폐타이어일수도..

 

취재는 지난 9월, 한 통의 제보전화로 시작됐습니다. 완성차 업체 연구소에서 차량 주행 시험에 사용하고 폐기하는 '테스트 타이어' 중 일부가 시중에 새것으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는 겁니다. '테스트 타이어'는 극한 상황을 가정한 고속 주행과 급제동을 반복하기 때문에 수명이 크게 단축돼, 전량 폐기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타이어가 몰래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타이어가 쌓여 있다는 충남 홍성의 한 창고로 향했습니다.

■ 창고에 보관 중인 테스트 타이어만 8천여 개

인적이 드문 충남 홍성군의 한 창고. 자물쇠로 문이 잠겨 있었지만, 경찰의 도움을 받아 강제로 문을 열고 진입했습니다. 창고 내부에는 제보 내용대로 타이어가 사람 키를 훌쩍 넘을 만큼 가득히 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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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트 타이어 보관창고 내부

자세히 들여다보니 타이어에 'TEST' 또는 '연구' 등의 글자가 찍혀 있었고, 타이어 옆면에는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재사용할 수 없도록 '테스트'라고 기록하고, 구멍까지 낸 것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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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트 타이어에 적힌 글자와 구멍

타이어를 빼돌린 곳은 완성차 업체가 테스트가 끝난 타이어를 폐기 처리하도록 지정한 폐기물처리업체였습니다. 폐기물처리업체는 겉보기가 멀쩡한 것들을 골라 판매점에 팔아넘겼고, 판매점은 이 타이어를 판매 전 창고에 보관 중이었던 겁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창고에 쌓여 있던 타이어만 8천 개가 넘었습니다.

■ 구멍 난 곳은 ‘때우고’, 적힌 글자는 ‘지우고’

'테스트 타이어'는 판매점이 작업장으로 옮겨 새 제품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타이어에다 낸 2~3cm의 구멍을 양쪽에 고무를 덧대고, 높은 열로 가열해 감쪽같이 메우는 이른바 '불방' 작업을 한 겁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불방'한 곳을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큼 교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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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방’ 작업한 부분

타이어에 적힌 'TEST' 나 '연구' 같은 글자들은 시너로 감쪽같이 지웠습니다. 취재진이 실제 시너를 'TEST' 글자 위에 뿌리고 두세 차례 솔로 문지르자 금세 사라졌습니다. 이런 작업을 마친 타이어들은 판매점에 보관됐다가, 소비자에게 팔려나갔습니다.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불방' 작업을 한 부분을 차량 바퀴 안쪽으로 장착해 눈속임하는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 돈과 맞바꾼 안전

이유는 돈이었습니다. 폐기물처리업체는 타이어를 파쇄한 뒤 밧줄 등 다른 제품으로 재활용해야 하는 데,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타이어 판매점으로 빼돌린 겁니다. 타이어 판매점은 폐기물처리업체에 한 개에 5천 원에서 7천 원가량을 주고 사들인 '테스트 타이어'를 소비자에게 마치 정상 타이어를 할인해 주는 것처럼 속이고 10~30%가량 싸게 팔았습니다.

일부 판매점은 정상가격을 받기도 했는데, 이렇게 최근 4년 동안 아산과 천안 등 충남 9개 판매점에서 이미 팔려나간 '테스트 타이어'도 취재진이 확인한 규모만 6억 원, 타이어 개수로는 8천 개에 가깝습니다. 차량 2천여 대가 폐기해야 할 '테스트 타이어'를 달고 운행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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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트 타이어 유통한 판매점

■ 안전성 검증에서 결함 발견

이런 '테스트 타이어'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요? 판매점에서 보관 중이던 타이어 3점을 가지고, 경남 양산에 있는 한 타이어 제조사 연구소를 찾아 실험을 의뢰했습니다. 타이어 제조업체에서 제품 품질을 확인하는 공인된 방법이 '고속 내구력 실험'입니다. 실험할 타이어를 장착하고, 처음 시속 230km에서 시작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점차 속도를 높여 최대 260km까지 달립니다. 이때 정상 제품은 1시간 50분까지 품질에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먼저 '불방' 작업은 하지 않고 타이어 안쪽에 패치로만 때운 '테스트 타이어'로 실험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실험 시작 1시간 만에 패치로 때운 부분의 바깥 쪽이 2cm가량 찢어져 버렸습니다. 이 상태로 고속 주행을 계속할 경우 타이어가 점점 찢어져, 결국에는 타이어 전체가 파손될 수 있는 결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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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치 붙인 타이어 갈라짐

구멍 난 부분을 '불방' 작업한 타이어도 마찬가지였는데요. 1시간의 '고속 내구력실험'을 거치자, '불방'한 부분 주위가 점점 부풀어 올랐습니다. 타이어 제조사 연구소 측은 '불방' 작업을 할 때 구멍 난 곳 주위에 높은 열로 가열하고 압력을 가하는데, 이때 타이어의 골격을 이루는 '코드' 부분이 변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타이어로 계속 주행할 경우, 언젠가는 타이어가 찢어지거나 바람이 빠지면서 갑자기 차체가 주저앉아 버릴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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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마친 ‘불방’ 작업한 타이어

■ 소비자만 몰랐을 뿐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테스트 타이어'를 빼돌려, 불법으로 팔아먹는 곳이 취재를 한 이 판매점뿐일까요? 그래서 시중 타이어 판매점을 대상으로 확인해보았습니다. 시중 일반 타이어 판매점에 '테스트 타이어'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10곳의 판매점 가운데 5곳이 '테스트 타이어'를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판매점은 인터넷에 최저가라며 판매하고 있는 타이어 대부분이 '테스트 타이어'라며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테스트 타이어' 유통이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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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타이어 판매 화면

■ 취재 후…관련자 입건, 수사 확대

경찰은 취재가 시작되면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테스트 타이어 보관창고와 아산의 판매점 2곳을 압수 수색했고, 압수한 회계장부와 압수물을 통해 39살 김 모 씨가 홍성과 아산 등지에 있는 판매점 9곳에서 지난 4년간 시가 6억 원어치, 8천여 개의 테스트 타이어를 판매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경찰은 판매업자와 폐기물처리업체 관계자 등 13명을 입건하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완성차 업체 등 '테스트 타이어' 배출업자가 폐기물처리업체를 선정해 폐기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처럼 폐기물처리업체가 작정하고 '테스트 타이어'를 유통시킬 때는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 '테스트 타이어'는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해 처리하는 방법 등의 별도 규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타이어의 유통. 허술한 법제도 개선은 남겨진 숙제입니다.

[연관 기사]☞ [뉴스9] [현장추적] ‘테스트용 폐타이어’ 구멍 때워 새 제품 둔갑…안전 위협☞ [뉴스9] ‘테스트 타이어’ 공공연히 유통…소비자 안전 위협

성용희기자 (heestory@k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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