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첫사랑과의 재회, 페라리 로마

[시승기] 첫사랑과의 재회, 페라리 로마

나는 자동차 업계에서 소문난 ‘페라리 덕후’다. 이 덕질은 1984년, ‘테스타로사’라는 차가 나오면서 시작된다. 당시 국내 유일의 자동차 전문지였던 월간 ‘자동차생활’에 등장한, 숨 막히게 아름다운 모습을 본 후 페라리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 덕질은 이메일 아이디로도 이어졌다. PC통신 시절에 만든 ‘ferrari5’라는 아이디를 지금껏 사용하는 건 내가 얼마나 페라리에 미쳐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회사 이메일 아이디에도 그대로 사용 중인데, 가끔은 페라리의 경쟁사 홍보 담당자로부터 “페라리 아이디를 쓰시는 기자님이 우리 브랜드 행사에 오셔도 되겠냐”면서 농담 섞인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에게 페라리는 첫사랑 같은 존재인 것을.

이렇게 혼자 페라리에 미쳐 있었지만, 어느덧 페라리는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누구에게는 하루가 멀다고 페라리 시승회 초청장이 날아오는데, 나에게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페라리 시승회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가 확인해보니, 무려 2018년 가을이 마지막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페라리 홍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자신에게 시승차를 달라고 한 적이 없지 않으냐는 답이 돌아왔다. 참 이상도 하지. 시승차를 달라고 하지 않았어도 시승회에는 계속 불러줬는데, 시승차를 달라고 하지 않아서 시승회에 안 불렀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오랜만에 페라리를 시승해보기로 했다. 서킷이 아닌 공도에서 시승하는 만큼, 여기에 더 어울리는 ‘로마’를 시승차로 골랐다.

◆‘우아한 백조’ 같은 자태

스페인광장 앞에 선 페라리 로마(페라리 제공)<스페인광장 앞에 선 페라리 로마(페라리 제공)>

시승차는 흰색으로 준비됐다. 일반적으로 ‘페라리’ 하면 고유의 붉은색인 ‘로소 코르사’ 컬러를 떠올리게 마련이어서, 흰색 페라리는 다소 낯설다.

지난 2020년 3월, 아시아 지역 최초로 한국에서 데뷔한 로마는 페라리의 다양한 라인업 중에 GT(그랜드 투어러) 성향에 가까운 차다. 엔진이 프런트 미드십에 자리하는 건 현재 페라리 라인업에서 812 GTS와 로마, 프로토피노 M 등 셋이다. 812 GTS는 V12 엔진을 얹은 플래그십 모델이라면, 로마는 V8 3.9ℓ 엔진을 얹었고, 크기도 상대적으로 컴팩트하다.

[시승기] 첫사랑과의 재회, 페라리 로마

차의 콘셉트는 ‘라 누오바 돌체 비타(La Nuova Dolce Vita). ’새로운 달콤한 인생’이라는 뜻에서 느껴지듯이, 서킷에서 쏘는 일반적인 슈퍼카가 아니라 인생을 여유 있게 즐기는 데 딱 어울리는 GT카의 성격임을 알 수 있다. 페라리 홈페이지에 올라온 ‘로마’의 첫 사진은 차 이름에 걸맞게 영화 ‘달콤한 인생(La Nuova Dolce Vita))’에서 나온 스페인 광장 계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차체 길이는 4656㎜로 페라리 선대 모델인 ‘캘리포니아’보다 91㎜ 길고, 휠베이스는 캘리포니아와 로마가 2670㎜로 같다. 반면 전폭은 캘리포니아보다 69㎜ 넓고, 높이는 9㎜가 낮다. 두 차의 휠베이스는 같지만, 로마는 차체 너비가 넓고 전고가 낮아 훨씬 안정적인 스탠스를 보인다. 프로토피노 M은 로마보다 전장이 62㎜ 짧고, 전고는 17㎜ 높고, 너비는 36㎜ 좁다. 휠베이스는 두 차와 같은 2670㎜다. 이를 종합하면, 로마의 차체가 캘리포니아나 포르토피노 M보다 더 길고 늘씬하며 날렵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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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인원은 2+2. 말 그대로 2인승이 기본이고 여기에 두 명을 플러스 개념으로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뒷좌석은 안전벹트도 마련돼 있고 키 177㎝인 기자가 몸을 구겨 넣을 수는 있지만, 그 상태로 오래 타고 있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런 공간은 보통 가방을 던져두거나, 반려동물을 앉혀두면 딱 알맞다.

엔진 배기량은 캘리포니아의 442㏄가 줄었지만, 최고출력은 캘리포니아의 460마력보다 훨씬 강력한 620마력을 자랑한다. 이 엔진은 최대토크는 77.6㎏·m이고 3000~5750rpm에서 고르게 뿜어낸다. 포르토피노 M도 이 엔진을 얹고 있어 성능 면에서는 로마와 유사하다. 대신 포르토피노 M은 전동식 하드톱 구조여서 공차중량이 1664㎏에 이르지만, 쿠페 구조인 로마는 1570㎏으로 상대적으로 가볍다.

사실 페라리 로마는 이러한 숫자보다는 달릴 때의 감성이 더 중요한 차다. ‘지금까지 이렇게 편안한 페라리 모델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 주행에서 안락하고 편안하며 여유롭다. 앞뒤 무게 배분은 포르토피노 M이 46:54인 데 비해, 로마는 정확히 50:50이다. 일반도로에서 이 비율의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지만, 확실한 건 주행안전성이 아주 훌륭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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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주행안전성은 3세대 전자식 차동제한장치(E-Diff3)와 F1 트랙션 컨트롤, 전자식 파워스티어링, 전자식 차동제한장치, 듀얼 코일 타입 자기유동식 서스펜션(SCM-E)이 잘 버무려진 결과물이다. 로마는 여기에 상황에 따라 하나 이상의 바퀴에서 브레이크 압력을 부드럽게 조절하는 횡 방향 동적 제어 시스템인 ‘페라리 다이내믹 인헨서’까지 적용했다. 레이스 모드에서만 작동하는 다이내믹 인헨서는 사이드 슬립 주행 특성을 좀 더 부드럽고, 예측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엔진음과 배기음 역시 중후한 멋이 있다. 시동을 걸면 그윽한 중저음이 들려오는데,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배기음이 상당히 억제돼 있다. 5가지 주행모드가 마련된 마네티노는 어떤 걸 선택해도 배기음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이 배기음을 좀 더 강하게 세팅할 수 있도록 개인화 모드가 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타이어는 앞 245/35 ZR20, 뒤 285/35 ZR20 사이즈이고 피렐리 P-제로 제품이다. GT카치고는 편평률이 상당히 낮은 타이어를 달았는데, 일반도로 주행에서는 예상보다 부드러운 감각을 전했다.

[시승기] 첫사랑과의 재회, 페라리 로마

인증 연비는 도심 6.5㎞/ℓ, 고속도로 9.1㎞/ℓ다. ‘페라리 타는 이들에게 연비가 뭐가 중요하겠나’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연비는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다. 벼락부자를 빼고는 대부분 돈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재산을 차곡차곡 모았기 때문에 페라리 같은 차를 살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좋은 연비와 빠른 변속을 위한 선택이다. 24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승(FMK의 시승차는 모두 같은 조건)에서 연비를 체크해보기는 무리였지만, 민첩한 변속만큼은 확실히 일품이었다. 다만 도로 정체 때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 특유의 덜컥거림이 약간 느껴진다.

페라리 로마의 시작 가격은 3억3300만원부터 시작하고, 옵션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페라리의 모델을 구매하는 오너들은 대부분 옵션을 여러 가지 선택하기 때문에 차 가격은 넉넉히 4억원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시승기] 첫사랑과의 재회, 페라리 로마

오랜만에 만난 로마는 페라리와 소원했던 시간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보여줬다. 좀 더 정확해지고 편안해진 주행감각과 안락한 승차감은 마음에 들었지만, 터치스크린의 영역이 커지면서 주행 중 조작이 불편해진 건 옥의 티다. 물론 터치스크린이 더 편한 이들도 있겠으나, 기자처럼 노안이 온 운전자들에게는 절대 달갑지 않은 변화다.

지금 이 순간, 풋풋하고 아름다운 시절에 만난 첫사랑이 그리운가? 그렇다면 다시 만나 뜨겁게 재회해보자. 우리의 새로운 달콤한 인생을 위해서.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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